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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집수리를 시작했다. 작년 11월에 세들어 산 사람이 나간 후, 겨울이라고, 아직 시간있다고, 취직시험 공부한다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온다고..기타 등등 기타 등등 하다보니 몇 군데 견적만 받았을 뿐 수리업체를 결정하지를 못했다.

 

우리집은 77년에 짓고, 93년에 두번째 집주인이 들어와 살면서 일부를 수리했다. 원래는 장판지로 발라졌을 방 몇 개를 원목마루로 만들어 현대적인 맛을 냈다. 견적내러 온 업자들이 모두 제대로 바꿨다고 칭찬하는 원목마루이다.

 

헌데 이 양반은 바닥을 마루만 바꾼 것만 흠잡을 게 없을 뿐 나머지는 모두 원작을 많이 훼손했다. 가령 원목 나무결을 살린 현관문과 처마에 래커칠이 아닌 페인트 칠을 해서 나무맛을 죽여놓았고 잔디밭이었을 뒷마당에는 시멘트를 채웠다. 우물도 봉했고. 홍자주색이던 계단 난간은 칙칙한 색으로 바뀌었다.

 

77년 지은 집이다보니 물론 원작에도 고쳐야 할 점이 많다. 일단 거실과 응접실은 바닥 난방이 되어있지 않고 라디에이터를 쓰게 되어있어 겨울이 매우 추울 것이라고 했다. 1층의 공동공간이 부엌, 거실, 응접실로 세 조각이 나있어서 변변한 가구 들일 곳이 없었다.

 

우리집에서 공유가구로는 소파, 피아노, 컴퓨터가 있는데 이걸 들여놓을 벽면이 없다. 그나마 응접실과 부엌이 훤한 벽면이 있긴 하지만(거실은 화장실과 여러 방으로 가는 문짝과 계단, 현관으로 계속 끊어져 벽이 모두 짧다) 식구가 많다보니 응접실은 부부침실로 만들어야 할 판이고, 부엌에 피아노와 컴퓨터를 놓으면 그릇장을 놓을 곳이 마땅찮다. 6개쯤 되는 천정높이 책꽂이는 아예 지상을 포기하고 지하에 들여놓기로 했다가 최근에 2층 베란다의 다락같은 곳을 트면서 겨우 공간이 생겼다.

 

그러니 이 공간들을 틀지 말지, 바닥난방을 깔지 말지, 오래된 알루미늄 창틀을 갈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니 자문 겸해서 수리업자를 불렀는데, 이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하나씩 배워가는 점은 좋은데, 도대체 돈이 얼마나 들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 이 분들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령 보통의 수리업자들은 일단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사모님이 얼마 정도를 수리에 쓸지를 이야기하시면 거기에 맞춰서 할게요."

 

나로서는, 지금 이 집에는 무엇무엇은 고쳐서 쓸만하고, 무엇무엇은 아예 확 갈아야 하며, 이렇게 할 경우, 좋은 품질로는 최고 얼마부터 싸게는 얼마까지 먹힌다, 이렇게 견적이 나오는 줄 알았다.

 

헌데, 하나같이 "얼마를 수리에 쓸 거냐"를 묻는다. 견적은 거기에 맞출 뿐이라는 것이다.

 

타일값도, 벽지값도 천차만별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내가 말하는 돈보다는 늘 더 큰 공사견적서를 내놓는다는데 있다. 그 견적서를 들고 다시 깎아나가는 형식인지는 몰라도.

 

가령 내가 5천만원 정도 수리비를 예상하고 있다니까 9천만원은 들여야 한다는 견적서를 제시했고, 그 다음 사람은 '지난번 사람이 제시한 9천만원은 무리라서 다시 사장님을 불렀다'고까지 말했는데도 1억1천만원짜리 견적서를 내밀었다.

 

강남구와 서초구에 살면서 나는 45평 아파트(실평수는 38평이 조금 넘는다)를 1억원을 들여서 고치는 것을 보아왔던 터라 실평수가 60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의 수리견적이 이 정도 나오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라면 내가 돈이 없다는 것뿐.

 

다시 희망사항을 줄여서 말한 결과 다시 견적은 4천만원대로 내려왔는데, 남편의 반대에 부딪쳤다. 

 

기름보일러는 가스보일러로 바꾸고, 낡아서 아이들이 싫어하는 욕실과 부엌은 고치고, 전체 도배를 하고 페인트칠만 새로 하자는 것이다. 가격은 2천만원 이내를 잡았다. 

 

나는 '내 퇴직금 받아서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쓰자는데 웬 말이냐'며 수리를 강행하려고 했고, 남편은 우리 부부 모두 언제 퇴직할지 모르니 위에 애들 둘의 대학등록금 4년치는 확보해놓도록 집 고치는데 들이는 돈은 최소화하자는 주의였다.

 

내가 집을 원대로 고치지 못해 동동거리니, 수험생인 애들이 도리어 "엄마, 대학 가서 우리가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벌테니 걱정하지 마. 수리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역성을 들어주었다.

 

그래도 반쪽이 반대를 하면 고집을 피우기가 힘들다.

 

그래서 다시 견적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이게 왜 이리 비싼가 무얼 줄일 수 있나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견적서의 거품을 실감했다.

 

현재 나는 2천300만원대에 수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1억1천만원을 부른 사람의 견적에서 온돌난방을 빼고(이것의 최저견적업체 가격은 500만원대였다) 창문교체를 빼고(이것은 공히 1천만원이 넘었다) 대신 보일러는 2만칼로리를 더한 것(설치비 포함 100만원대?)이다. 물론 소소하게 신발장을 새로 바꾼다거나 대문을 수리한다거나 뒷마당을 까는 것이 들어있지만 이런 것은 어느 업체나 서비스품목이거나 건당 50만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니까 최저업체와 비교하면 최고업체는 거의 7천만원 가까운 거품을 얹어놓은 셈이다.

 

그런데도 페인트나 도배지나 욕실 세목이나 타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니까 소비자로서는 따지기가 힘들다. 

 

타일이나 도배지나 욕실 세목처럼 내가 원하는 가격 상품대를 대충 알고 그걸 요청할 것 같으면 다른,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업자가 가격표를 올려놓으면 그걸 알아보기는 힘드니까 바가지 쓸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

 

최근에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그만두게 된 분과 틀어지게 된 것도 알아보기 힘든 가격에 대한 의문제기를 불쾌해하면서였다.

 

그 분은 대부분의 기물과 도배 칠 같은 세목은 가격이 적었지만 유독 온돌화 가격이 비쌌다. 15평 정도의 면적을 온돌화하는데, 모래가 2차, 시멘트가 150포가 들어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데다가 버려야 할 물건을 12 트럭이나 된다고 적었다. 그래도 이건 모르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 분이 현재의 알루미늄 새시를 교체할 경우 철거비만 90만원이 든다고 쓴 데서 시작됐다. 내가 그걸 고물상을 불러서 공짜로 철거하려고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집수리에 앞서 나는 태양열온수기를 철거했다. 고장도 잦고 열효율도 높지 않아서 그걸 치우고 2층 옥상이나 멋들어지게 쓰자는 심산이었다.

 

그걸 치우는 날, 열린 대문으로 고물상이 들어왔다. "뭐 버릴 것 없냐"는 말에 뒷마당에 있던 철제 무지개다리를 보여드렸다. 포도넝쿨 같은 것을 올리려던 심산이었는지 몰라도 2미터 너비의 무지개다리(어린이놀이터에 있는 무지개다리를 두 세개 포갠 모양)는 뒷마당에서 훤히 보이는 석파정과 북한산의 경관만 가리고 있었다. 한번은 고물상을 불러서 그걸 가져가라고 했더니 도리어 철거비를 기십만원 달라고 해서 그만 둔 터였다.

 

그런데 이 분은 쇠톱을 하나 가지고 오더니 소리도 없이 작업을 해서는 고맙다고 들고 갔다. 철거비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무료 철거를 해줄테니 불러달라고 명함을 주고 갔다.

 

그래서 90만원을 아끼기 위해 그 분한테 알루미늄 창틀을 수거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마고 했다. 그러면 철거비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철거로 생기는 폐자재 비용도 줄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수리업자는 괜시리 창틀만 망쳐놓는다고 반대를 해서, 그 말도 옳다 싶었다. 일단 한 개를 시켜보고 솜씨가 쓸만하면 창틀을 다 맡기고 실력이 없으면 그냥 철거비 90만원을 쓰고 철거를 하자고 합의를 했다.

 

헌데 나는 회사에 나와있고, 수리업자가 고물상을 만난 후 그 사람 솜씨가 안 좋으니 쓸 수 없다고 전화로 알려왔다. 나는 그러냐고, 그럼 그냥 견적서대로 하시라고 했다.

 

헌데 다른 건 때문에 고쳐온 견적서에 철거 가격이 줄어 있었다. 반대로 다른 가격은 늘어나 있었다. 내가 '폐자재가 12차면 몇 톤 트럭으로 그렇다는 것이냐'고 질문한 항목은 차 한 대당 가격이 줄어 있었다. 물론 전체로 보면 여기 저기 옮겼을 뿐 그 가격이 그 가격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게 왜 이러냐고 질문을 했더니 화를 크게 내면서 안하시겠다고 했다. 나처럼 까다로운 건물주한테는 수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나중에 더 좋은 분을 만나서 다행이긴 하지만 집 고치는 것에 대해서 잘 가르쳐준 이 분과 이렇게 틀어진 것은 참 안타깝다. 하지만 견적서가 의문스러우면 나로서는 물을 수 밖에 없다.

 

다행히도 친구가 현재의 수리업체를 소개해주었다. 이곳은 공사비만 적은 것이 아니라 일솜씨도 나무랄 데가 없고, 쓸데없는 공사는 말려주고, 필요한 일은 일일이 주문에 응해서 해결책을 찾아주니 고맙기 짝이 없다.

 

물론 이 곳 견적도 항목을 세세히 따지고 보면 서울 강북의 을지로와 강남의 논현동 자재시장을 뒤진 나에게는 의문스런 가격이 있다. 물론 공임을 놓고 보면 견적서에 적지 않은 일을 많이 해주니까 상쇄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업체의 공식적인 수임료는 공사비의 5%이다. 2천만원짜리 공사인데 겨우 1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열흘동안 현장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지휘하는 가격치고는 너무 적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견적에 조금씩 수임료 삼아 더 비용을 잡았다고 해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나처럼 고지식한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시세와 차이가 있는 견적서 항목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차라리 들어가는 자재비와 노임은 사실대로 기록하고, 감리감독 수임료를 확실하게 높여서 받으면 안되는 것일까. 나는 그런 견적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