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불어공부'에 해당하는 글 1건

돌이켜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불어시험을 네 번 보았다. 한불종금에 최초로 입사하면서 불어작문시험을 보았고 한국일보에 입사할 때 외국어시험으로 불어를 선택했다. 98년에 파리로 연수를 갈까 싶어서 프랑스 공인 불어시험을 쳤다. 지난해에는 플렉스 시험을 치렀다.

 

그때마다 불어는 잘했다. 심지어 세번째 시험에서는 불어를 놓은지 몇 년만에 다시 시작해서는 작문에서 최고 등급의 시험을 통과해서 나를 가르친 프랑스 대학생이 '천재'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였다. 

 

헌데 그 때도 결국 연수자로 선발된 사람은 나보다는 훨씬 못한 초급불어시험을 통과한 사람이었다. 심사위원들이 고급시험과 초급시험의 차이를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정부 공인 불어검정시험이 요즘은 명칭이 하나로 통일된 모양인데 당시만 해도 델프(DELF)라는 초급시험과 달프(DALF)라는 고급시험으로 나뉘었다. 델프의 4과목을 모두 합격해야(또는 합격한 수준이어야) 달프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매사가 좀 농땡이인 나는 뒤늦게야 공식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험주관청인 알리앙스프랑세즈에 문의했더니 델프시험 마감이 끝났다고 했다. 놀라서 방법이 없겠냐고 했더니 그 시험 4과목을 다 합격할만큼의 실력이 있다면 중간통과시험을 치러서 자격을 인정받고 달프에 곧바로 응시할 수 있다고 했다. 대신 델프는 한 과목만 합격해도 합격증서를 주는데, 이 중간통과시험은 그야말로 달프를 응시할 자격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증서도 없어서 그 후에 달프 시험을 한 과목이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시험이라고 했다.

 

그래도 보겠느냐고 해서 봤고, 통과했고 달프시험에 응시해서 4과목 가운데 작문분야에서 자격증을 받았다. 과목이 회화 청취 등 4과목이었는데, 나처럼 토종인 학생은 말하거나 듣는 것과 연관된 다른 과목에서는 단기간에 고급수준에 이르기 힘들었다.

 

그런데 연수자 선발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이 나한테 불어를 어떤 것을 잘하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초급불어 합격자는 네 분야 자격증을 모두 냈는데 나는 작문 하나만 냈으니 그 부분을 물어본 모양이었다. 당시에 우리 회사의 후배 하나가 이듬해에 자기가 가기 위해 나를 못가게 하려고 심사위원마다 쫓아다닌 탓에 심사위원들이 내 흠을 찾으려고 하다가 내가 작문 부분만 시험이수증을 낸 것을 지적한 것인데, 그런 배경에 좀 둔한 나로서는 그냥 '아무래도 작문이 제일 잘하는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달프에서 작문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은 델프의 네 과목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난 것인데도 그 부분을 설명하지 않아 차이를 인정받지 못했다. 

 

내가 불어작문을 잘하는 것은 학교 다닐 때 혹독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외대에는 학점이 후한 작문 교수와 학점이 매우 짜지만 학생들을 달달 볶아서 진짜 불어를 쓰게 만드는 로제 르베리에라는 작문 교수가 계셨는데, 나는 학점은 못 받더라도 진짜 실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싶어서 매년 르베리에 교수의 수업에 매달렸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작문만큼은 코끼리 다리를 그릴 정도는 된다.

 

이번에 플렉스에서 82점을 맞는 것은 말하기 듣기 부분이니 그동안 못하던 부분이 보완된 셈이다.

 

직장에서 불어를 손놓고 있다가 몇 달 만에 이처럼 필요한 성과를 거두는 데는 내나름대로 학습법이 괜찮다는 이유도 있다. 

 

과거에 달프 시험을 칠 때 나는 프랑스 대학생과 일주일에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나혼자 자습을 많이 했다. 자습은 주로 르몽드 인터넷판에서 불어기사를 하나 인쇄해서 큰 소리로 읽는 것이다. 르몽드는 렉스프레스보다는 쉽지만 영어신문으로 치면 파이낸셜타임스 수준으로 상당히 세련된 표현을 많이 쓴다.(영어신문도 뉴욕타임스보다는 워싱턴포스트가 약간 더 세련됐고 파이낸셜이 이 둘보다 훨씬 세련됐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처음에 읽으면 뜻이 확 와닫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내서 자꾸 읽다보면 어느 순간 구문이 보이고 뜻이 명확해진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뜻이 실현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이 방법이 굉장히 좋다.

 

물론 이번에 불어시험을 준비하면서는 프랑스에서 박사를 받은 벗이 일러주기를 간단한 책을 외워버리라고 했다. 그래야 말하는 것이 입에 익는다고.

 

한국어는 책을 많이 읽어도 회화와는 또 문어체가 다르지만 불어나 영어는 말하는 것이 곧 글이기 때문에 좋은 글을 외워버리면 말하는 데 써먹을 수 있다고 했다. 아주 좋은 방법이라 여겨지지만 원래도 외우는 것에는 별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서 나는 이 방법을 많이 쓰지는 못했다.

 

대신 프랑스인 교수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대화를 하면서 입을 뗐고, 인터넷 방송을 많이 활용했다.

특히 프랑스문화교육방송인 떼베쌩끄의 인터넷판인 tv5.org에서 'Merci Professeur'를 들으면서 입과 귀가 놀랄 정도로 많이 트였다. 

 

리용대의 교수가 프랑스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설명해주는 방식인데, 아주 색다르고 재미있고 분량도 짧아서 귀에 쏙쏙 들어온다. 몇번씩 다시 듣기를 해도 지리하지 않고, 내용이 무궁무진하니까 이것저것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

 

시사방송도 인터넷에 많지만 워낙 프랑스사람들 말이 빠른데 방송인은 더 빠른데다 시사내용은 아는 단어가 많이 나오니까 설렁설렁 듣게되는 단점이 있다.

 

하기야 요즘에 누가 그렇게 불어를 공부하나 말이다. 그래도 국제기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불어를 알면 좋다.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르몽드를 소리내서 읽을 것> <떼베쌩끄의 메르씨 프로프쇠르를 많이 자주 들을 것> 이 두가지만 해도 프랑스 대학에서 수학할 수준에는 단기간에 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