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반말'에 해당하는 글 1건

일흔이 넘은 어머니가 아침 산보길에 자동차와 부딪혔다. 길을 건너는데 차가 달려와 옆을 스치는 바람에 넘어지셨다. 차와 부딪힌 몸 왼쪽과 엎어져 생긴 얼굴의 타박상만 치료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척추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더구나 첫번째로 갔던 병원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재활을 서두는 바람에 부러진 척추뼈가 내려앉으면서 척추 신경을 눌러 자칫하면 큰 탈이 날 지도 모를 기점에 와있다.

 

우여곡절 끝에 사정을 알게 되어 척추수술을 하기 위해 부랴부랴 대형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새로 옮긴 병원은 시설이니 관리가 말할 수 없이 잘 흘러가고 있어 현재는 매우 안심하고 있다.

 

그런데 처음 이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반긴 것은...

 

의사의 반말이었다.

 

응급실로 옮기면 처음 하는 과정이 어떻게 다쳤고 어디가 불편하고 하는 것을 자세히 묻는 문진이다. 아마도 퇴근 시간 후에 응급실에서 문진을 담당하는 의사이니 인턴 아니면 레지던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많다고 해도 서른을 넘기 힘들다. 눈짐작으로는 스물 다섯도 안되어 보이는 여자의사이다.

 

헌데 이 의사, 70대 중반인 중반인 어머니한테 이렇게 문진을 한다.

 

"다른 아픈 데는 없고"

 

"평소 약 드시는 거는"

 

그러다가 가끔 '요'자를 붙이기도 하는데, 대개는 말끝을 흐리며 공대를 하지 않는다.

 

참 오랜만에 대하는 모습이다.

 

예전에, 아이들 데리고 병원을 다니면 분명 내 나이보다 많아 보이지 않는 의사가 반말을 하곤 했다.

 

나는 낯선 사람의 반말이 싫다. 헌데 여자이다보니 도처에서 반말을 많이 만난다.

 

택시를 타면 반말을 서슴없이 하는 남자운전사를 만나기도 하고 은행창구에서 여직원이 친한 사람 대하듯 반말을 한다.

 

대개 택시운전사들은 자기가 나이가 더 많다고 생각해서 반말을 하는 것이고, 은행창구 여직원은 반말로 하면 고객과 동급이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의사들은 권위를 높이려고 반말을 하는듯했다.

 

이런 사람들한테 내 대응은 한결같다. 처음에는 존대말로 대꾸하다가 그래도 반말로 하면 나 역시 반말을 한다. 말끝을 흐리는 반말이 아니라 '그래' '응' '아니야' 이런 아주 확실한 반말을 한다. 그러면 이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움찔 놀라면서 존대말로 돌아온다. 그들에게도 낯선 이의 반말은 불쾌한 것이다.

 

같이 반말을 놓기 억울한 어린 사람한테는 '나는 반말을 싫어한다'고 밝히고, 고치라고 한다.

 

물론 이 날도 이 어리디 어린 의사한테 한 소리를 했다. "의사선생님, 환자분 연세가 얼마인데 왜 반말을 해요?"

 

이 의사, 이런다. "응급실은 바쁘니까 빨리 하려고 원래 그래요." 시간을 다투는 환자가 달려오면 응급처치를 나눈 사람끼리 서둘러 정보를 교환하다가 그럴 수는 있겠지. 이건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내가 보기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반말을 하려고 하니 되려 말이 길어지는데,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다른 아픈 데는요?'하면 될 것을 '다른 아픈 데는?'하고 물으려니 제 생각에도 염치가 없어서 '다른 아픈 데는 없고'라는 식으로 말을 눙치는 듯하다. 눙치는 어투를 만드느라 '요'자 한 자 붙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말이 길어진다. 

 

나중에 이모가 이러신다. "점쟁이가, 뭐가, 와 반말을 하노."(점쟁이야, 뭐야, 왜 반말을 해?)

 

그러고 보니 의사의 반말은 점쟁이의 반말하고 똑 닮았다.

 

나이 유세를 하는 운전사의 반말도 아니요, 맞먹자는 은행창구 직원의 반말도 아니요, 내 권위에 복종하라는 점쟁이의 반말이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완전히 무시되는 '절대 반말'이다.

 

점쟁이가 반말을 하는 것은 자신을 신의 대리자로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신이 사람을 대하듯 신과 통한 자기는 모든 사람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신과 통한다고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접신의 영역에서 내쳐질까봐 상대방은 반말의 불쾌함을 참고 있지만 과연 의사가 그렇게 신통한가 말이다.

 

요즘 세상에 현대의학의 신통력을 믿는 사람은 점쟁이의 신통력을 믿는 숫자와 비슷할 것이다. 아니 점쟁이야 자발적으로 찾아갔으니 신통력을 믿어서였겠지만 병원은 다친 다음에 불가피해서 찾아간 것이니 병원에 온 사람의 신뢰도는 점집을 찾아간 사람의 신뢰도보다도 낮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의사의 반말을 참아내는 것은 의사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건 중국집 주방장 기분을 거스르게 했다가 침 뱉은 자장면을 먹을 것을 걱정하고 종업원의 불친절을 문제 삼다가 손가락 담긴 쥬스를 마시게 될 경우을 피하고 싶은 심정과 바슷한 것이다. 의사들이 반말을 할수록 의사는 더 낮추 보일 뿐이다.

 

그러니 아직도 반말을 신통력과 권위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의사들이여, 제발 그냥 서로 공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