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뒤에 있는 자연학습장에 다녀왔다.

 

한번 다 만든 것을 다 뒤집어 엎고 다시 만든 만행의 현장이라는 시민의 고발에 따라 현장을 보고 왔다. 시설에 돈을 쳐바르면서 관리는 소홀히 하는 한국 관공서의 폐단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관을 비난할 수만은 없게 시민들의 무법도 말이 아니올씨다였다. 좀 귀해보이는 야생화밭은 식물이 한 두 개만 남아 밭이 썰렁했는데, 모두들 시민들이 무단으로 캐가서 그렇단다. 

 

                                               처음 조성할 때는 이 공간에 동의나물이 그득했단다

 

                                                                       우산나물 사정도 마찬가지

 

 

야생이든 인공이든 식물을 보면 가을에 씨가 날 때 받아가거나 삽목 가지를 적당히 꺾어가면 되는데 왜 그런 도둑질을 거리낌없이들 하는지... 정말 대한민국의 수준에 진저리가 난다.

 

하긴 우리 동네만 해도 집을 고치는 데는 억 단위 돈을 들였다는 분이 산에서 명자나무를 캐왔다고 스스럼없이 자랑을 한다. "너무 예뻐서요." 아니 예쁜 거야 모르나, 왜 자연의 것을 훔치나 말이다.

 

그 집은 부엽토도 산에서 져나른다. 나무들이 먹어야 할 영양을.....그거 돈 만원이면 마당에 뿌릴 양은 얼마든지 살 수 있을텐데... 그나마 식물이나 잘 살리면 좋을텐데, 철쭉묘목을 빼곡이 심어놓은 사이에 명자나무도 심어놓았으니 식물이 몸살을 할 것은 보지 않아도 안다. 그렇지 않아도 늦봄에 벌써 진딧물을 없앤다고 농약까지 쳐댄다.

 

식물은 생육조건이 나쁘면 벌레에 무너진다. 널찍널찍이 심어놓았으면 진디가 왔다가도 적당히 수그러들텐데 워낙 밀생을 해놓으니 식물이 힘이 없어서 벌레한테 당하는 것이다. 탐욕스럽게 남의 것을 훔쳐와서는 그런 재앙을 입고, 다시 재앙을 농약으로 막아대려니 이웃에 사는 우리가 애꿎게 당한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 다음날부터 긴 비가 내려서 농약이 다 씻겨갔지만...

 

서론이 너무 길었네.

 

서대문 자연학습장에 모란이 씨가 여무는 중이다. 모란도 워낙 밀생을 해서 차라리 몇 개는 캐서 옮겨주었으면 싶지만 공공자산이라 그럴 수는 없고 씨앗을 따왔다.

 

거름을 아주 많이 넣고 키웠던지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졌는데도 한결같이 잎이 힘이 있고 씨앗도 아주 영글게 맺혀있다. 식물을 손상시키지는 말고, 조심스레 씨는 따가셔도 된다.

 

모란은 씨앗으로 키우면 5년은 키워야 꽃을 피운다지만 제 손으로 심은 씨가 싹을 내고 그 싹이 점점 커가는 모습만 봐도 꽃 보는 것 이상의 재미가 있다.

 

주택을 처음 둘러보는데 오가피 나무가 있길래 살던 사람의 취향이 참 특이하다 싶었다. 한 그루도 아니고 두 그루나 되었다. 고운 꽃만 심어도 못 다 심는다 싶어서 이사를 가면 캐버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빈집인 상태에서 아버지가 놀러오셔서는 오가피가 있다는 것을 퍽 신기해하셨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다보니 어쩐지 파버리기가 좀 아깝기는 했다.

 

이사와서 오가피를 키워보니 쌉싸름한 향기가 5, 6월에 잎에서 나는 것이 퍽 좋았다. 봄에 나는 새순은 두릅처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하긴 두릅나무과이다.

 

그래도 두 그루는 다 필요없다 싶어서 지난 달에 구절초 패랭이 약모밀 꿩의여름나무 등을 심어주러 우리집에 놀러온 나무강사에게 주었다. 그는 풀과 나무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인데, 오가피는 없었던 모양이다.

 

1미터쯤 되는 것은 그렇게 우리집을 떠났고 지금 마당에는 2미터쯤 되는 큰 놈만 남아있다.

 

6월쯤부터 공같은 것이 맺히더니 드디어 꽃이 피었다. 파꽃처럼 작은 꽃들이 모여 구형을 이룬다. 작은 꽃송이의 색깔은 노랑과 자주로 만일 크다면 더덕꽃과 비슷하다 했을 것이다.

 

향기는 모르겠는데 개미들이 매우 많이 꼬인다. 파리와 이름을 모르는 벌레도 모여든다.

 

꽃망울이 처음 맺혔을 때 모습이다. 이 상태에서는 매우 천천히 커진다. 

 

 

 

 

아래의 구슬 같은 것이 점점 커져서 저렇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벌인듯한 것이 찾아왔다. 개미는 꽃마다 한마리씩 붙어있다 싶게 많다.

 

 

설거지 하는 자리에서 잘 보이도록 원추리를 심었다. 감나무 옆, 조금은 언덕진 곳이다.

 

6월 하순부터 시작된 원추리의 꽃잔치는 이제 슬슬 접어가는 중이고, 대신 씨방이 날로 굵어가고 있다.

 

헌데 이 씨방이라는 놈, 꽃이 피었던 자리마다 다 맺히지 않는다. 원추리 꽃은 꽃대 하나가 올라오면 대여섯 송이의 꽃봉오리가 만들어지고 이 꽃이 크기에 따라 하루에 하나씩의 속도로 차례로 핀다. 하루 피었다가 다음날은 지기 때문에 영어로는 하루나리(day lily)라던가. 그런데 대여섯 송이 꽃 중에서 씨가 맺히는 것은 서너개이다. 

 

씨방은 꽃이 지기 전부터 맺히는지 꽃잎이 떨어졌을 즈음에는 벌써 비비탄만한 알이 달려있다. 반면 씨방이 맺히지 않은 것은 꽃이 똑 부러진 듯 밋밋한 자국만 남는다. 씨방은 날로 굵어가는데 이 자리는 갈색으로 말라가는 것만 다를 뿐 꽃이 지던 첫날과 늘 똑같다.

 

씨방과 밋밋한 자국의 차이는 벌이 지나갔느냐 지나가지 않았느냐로 생겨난다. 벌이 왔던 것은 씨가 맺히고 벌이 외면한 곳은 꽃이 떨어지면 그만이다. 

 

벌써 두 주 사이에 비비탄은 어른 엄지손가락만해졌다. 연두빛의 종모양 씨방은 그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씨방이 맺히지 못한 자리가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바로 붙어있는 꽃 중에서 벌은 왜 세 송이에는 들르고 그 옆 두 송이에는 들르지 않았을까? 아니 벌이 잘 날지 않는 비오는 날, 하필 두 송이가 핀 것일까? 꽃대가 올라올 때부터 정해진 꽃피는 순서를 피할 수도 없고, 비오는 날과 맑은 날을 원추리가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하필 왜 그 때, 하필 왜 나는...이런 생각이란 것을 식물은 하지 않겠지만 원추리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라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 수동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니까. 벌이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벌을 찾아나설 수 있으니까.

 

그런데 능동적으로 살고 있긴 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