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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칼럼을 통해 몇 번 썼으니 굳이 이 블로그에서까지 심각하게 말하고 싶진 않다.  

 

헌데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도대체 왜 그 사람들은 서로 묻지를 않는가 하는 점이다.

 

가령 이명박 대통령은 "물량 수급을 통해 생활 필수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를 집중 관리하라"고 했다는데, 이 50개를 알아내느라 공무원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허참, 이게 도대체 뭔 말인지.

 

대통령이 50개를 말했는데, 50개가 뭔지를 말하지 않았으면 "대통령(아님 형님~ 이렇게 친근하게 불러도 좋고), 50개가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물으면 되는 일 아닌가 말이다. 대통령이라면 그들의 보스니까 그들이 일을 잘하게 이끌어주는 사람이니 모르면 물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걸 묻지를 못해서 혼자 알아내느라(짐작하느라, 상상하느라...기타 등등) 똥줄을 태웠다니 참 이런 바보들이 어디있는가 말이다.

 

묻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가 로그인이 안되어서 10일을 못했다는데, (본인은 10일이라고 했지만 따지고 보니 20일이더라는 분석도 있다.) 컴퓨터가 로그인이 안되면 왜 묻지를 못하는가 말이다.

 

대통령이 새로 배정받은 컴퓨터 로그인 못 시키는 것은 크게 창피할 일이 아니다.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토대로 국가를 이끌어갈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로그인이 안되면 "어이, 이거 어찌된 일이요?"하고 직원을 불러 물으면 되는 일이다. 왜 혼자서 낑낑대느라 10일(또는 20일)을 허송세월하느냐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을 묻지 못하고 우회하느라 소동을 일으키는 이 정부의 수장과 그 부하들을 보자니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가 떠오른다.

 

분명 벗고 있는데, 벗고 있다고 말하면 마음이 나쁜 사람이 될까봐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이들은 질문을 하는 순간, 바보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일까? 역사를 돌이켜봐도 주위를 돌아봐도 바보란 질문을 하지 못하는 자이고 자기가 모르는 것을 감추려는 자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물을 줄 안다면 현명한 사람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수준은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이제라도 제발 없는 수준 있는 척 하지 말고 제발 묻고 돌아보고 남의 말을 들으면서 가기 바란다. 이게 그냥 당신들 정부만의 일이라면 비웃어주기만 하면 될 일이지만 수천만의 생활이 달린 일이다. 제발 모르면 물으라고!!

부암동에는 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이 있다. 이 가운데 별채 한 채를 홍지동으로 옮겨서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 그곳의 이름은 석파랑이다.

 

석파정은 현재 개인재산이어서 서울시문화재이지만 아무나 들어가볼 수가 없다.

 

아름다운 것을 탐하는 대원군이 별장으로 삼은 곳이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언젠가 그곳에 꼭 가보고 싶다.

 

비록 안에는 못 들어가지만 우리집 뒷마당에서는 석파정의 전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름에는 아름드리 나무그늘이 짙어져서 건물 몇 채는 잘 보이지 않다가 잎이 떨어지면 전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며칠 전 눈오는 날, 딸이 석파정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이렇게 아름다운 집의 주변이 말이 아니올씨다이다. 우선 석파정이 놓여있는 바위산이 절반쯤 잘려나갔다. 사진에는 절반 정도만 보이는데 저 아래쪽 능선이 뭉텅 잘려서 집이 놓여있는 모습이 편안하지 않다. 한옥의 위엄이 절반은 죽어버린다. 인공암벽으로라도 아래쪽의 능선을 살려서 문화재의 위용을 돋보이게 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흉물은 중간쯤에 있는 푸른색 공중화장실. 이곳에서 무언가 공사가 있었고 그때 인부들을 위해 마련한 성싶다. 1년 너머 지켜보았지만 저 공중화장실의 쓰임새는 전무한데 여전히 저기 저렇게 꼴사납게 버티고 서서 문화재의 격을 다 떨어뜨려버린다. 대책이 필요하다.

 

눈이 개고 난 후 찍은 사진을 한 장 더 보자.

 

 

남향받이집이라 마당으로 햇살이 쏟아져들어온다. 똑딱이에 가까운 디지털카메라로 멀리서 찍은 모습이라 그 진면목을 다 보여주지 못해서 안타깝다.

 

언젠가 이 집이 경매시장에 나왔다더라, 낙찰됐다더라, 결국에는 낙찰자가 포기하여 도로 유찰이라더라, 이런 저런 기사를 보았다.

 

이 정도 건물이라면 서울시에서 매입하든 정부에서 매입하든 공공기관이 사서 잘 가꾸어 시민들에게 공개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시에서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다고 엄한 건물짓고 조형물 만드는 데 수천억원의 돈을 쏟아붓느니 이런 집, 수십억 정도 들여 사들이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말이다.

 

 

이사한 후부터 통인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을 많이 다닌다. 전에 다니던 킴스클럽이라는 대형유통점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다르다.

 

처음에는 카드가 되지 않고 현금으로 일일이 계산해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흥정을 못하는 사람이라 정해진 가격이 없는 것도 불안했다.

 

그러나 한달 쯤 다녀보니 대형유통점이라는 것이 얼마나 장보기라는 것을 박제화시키는가를 알게 됐다. 거기서는 농수산물도 공산품처럼 생명이 없는 것이었다. 바코드로 긁어내리면 그만인 상품이었다.

 

반면 재래시장에서는 농수산물을 사면 농부와 어부가 어른거렸다. 우선은 가격이 하나 하나 눈에 들어와서 그렇고, 또 그 가격이 기막히게 싸서 그렇다.

 

어제도 장을 보러갔는데, 파래 한 줌에 삼백원이었다.

 

20여년전 겨울에 부안으로 김농사를 취재간 적이 있다. 똑딱 카메라 한 개를 들고 시외버스를 타고 홀로 간 취재였다.

 

어부들은 경운기로 개펄을 사정없이 달려 김양식장에 데려다주었다. 거기서 김을 삽으로 퍼서 배에 담고 다시 경운기로 옮겨 집으로 가져와 말렸다.

 

김은 겨울농사가 제철이라는데, 바다바람은 육지바람보다 매서웠다. 뭍에서는 산이나 강과 나무가 바람의 길을 요리 조리 길들이는 순간이 있지만 바다에서는 바람이 쉴 틈이 없었다.

 

거기다 김 채취는 바람보다 차가운 바다물에 삽을 담갔다가 떠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추운 날씨에 카메라 배터리가 자꾸 작동을 멈춰서 사진을 한장 찍을 때마다 겨드랑이에 끼웠다가 빼는 일을 되풀이해야 할 정도였으니 물일을 하는 어부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파래가 김보다 가까운 바다에서 채취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물 속에서 건지는 일은 똑같을 것이다. 그런데 그거 한 덩이에 삼백원. 두부가 얼어터지는 추위를 피해 보자기로 얼굴을 꽁꽁 쳐맨 시장 할머니가 그 중 백원을 먹는다면 어부가 버는 돈은 이백원일까. 유통업자가 받는 몫을 빼면 어부는 백원은 받는 것일까? 이건 정말 눈물이 나서 못 먹을 파래였다.

 

그러고보니 할머니가 세 덩이에 천원이라서 한 덩이에 사백원이라고 불렀다가 삼백원만 달라고 한 것을 나는 삼백원만 낼름 주고 왔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할머니, 어부님들, 다음부터는 절대로 깎지 않을게요. 힘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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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운동을 다룬 서화숙의 책입니다> 우리교육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