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애가 괜찮은 대학 공대에 들어갔다. 반수해서 간 대학이니까 대단하다고 무등을 태워주진 않았다. 엄마가 작년 한 해, 취직공부한다 집수리한다 하면서 수험생을 챙겨주지 못했는데 대학도서관에서 저 혼자 힘으로 공부한 것이 장하다고 궁둥이는 토닥여주었다.
입학식을 앞두고 대학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학시험을 봐서 반편성을 했단다. 여기서 딸이 심화반에 들었다. 20개 반 가운데 2개반을 뽑았는데 거기 뽑혔단다. 신입생 가운데는 과학고 출신들도 수두룩하다는데 수학이 상위 10%에 들었다니 이건 정말 기분이 좋았다.
큰 애를 가졌을 때 나는 태교삼아 '수학의 정석'을 풀었다. 애가 나를 닮아 수학을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한국 평균으로 내가 수학을 못한 것은 아니었고 방정식 수열 순열은 잘했는데 미분 적분의 개념을 전혀 몰랐다. 물론 다시 공부를 해도 미분 적분까지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태교 때문에 아이가 수학을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 때는 나를 닮아서 음치가 될까봐 피아노를 배웠는데 막내는 애들 셋 중에서 유일하게 음치이다. 하긴 중학교에 들어가는 셋째가 전자기타를 갖고 싶어해서 우선 통기타로 연습하라고 제 아빠가 대학시절 쓰던, 고장난 기타를 수리해서 최근 안겨주었는데, 이게 계기가 되어 아들이 작곡가라도 된다면 '엄마가 태교 삼아 피아노를 배웠다'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상과는 거리가 있듯이 나의 수학태교도 딸내미의 수학실력과는 무관하다. 큰 애는 중학교 때까지 수학을 특출나게 잘하지 않았다. 그저 노는 것만 아주 잘하는 튼튼한 아이였다.
걔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연년생 동생과 함께 영재수학이라는 방문교사 교육을 받겠다고 나선 적이 있다.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문제를 많이 시키는 이 방문교사 교육이 머리에는 도리어 나쁠 것 같아서 안된다고 했더니 둘째가 "엄마, 계모야? 왜 엄마는 공부도 안 시켜줘?"해서 하는수 없이 시작을 했다. 당시 살던 쌍문동 아파트에서는 이걸 안하는 애들이 거의 없었으니 이것도 드라마나 개그프로처럼 저희들만 빠지면 서운한가보다 했다.
헌데 둘째는 콧물을 닦아가며 1년 이상 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첫째는 한 두달 하는둥마는둥 하더니 그만 두었다. 그러면 또 그러마고 했다. (신기하게도 이때 열심히 한 둘째보다 첫째가 수학을 잘한다. 문과이긴 하지만 연년생인 둘째가 학원에 전혀 안가고도 수학을 거의 매번 만점 맞도록 가르친 사람이 언니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전국 수학학력평가를 한 적이 있다. 딸은 여기서 76점을 받았다. 그리고는 36점을 받은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똘망똘망해보이는 손녀친구가 36점을 받은 시험을 손녀딸은 76점을 받았다니까 할머니는 그 시험이 무척이나 어려운 것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내가 퇴근을 하니 시어머니가 그 자랑부터 했다.
내가 옷을 갈아입으며 "너희 반에 80점 이상 받은 사람이 몇 명인데?" 했더니 "응, 절반 넘어"란다. (시험 못 본 친구를 동행해서 제가 못하지는 않은 걸 보여주려고 할지언정 우리 딸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은 안한다.)
내가 그 애의 잔머리에 더 어이가 없어서 "아이구, 이 놈아, 너는 잘 하는 게 뭐냐"고 했더니 딸이 이랬다. "엄마, 나 체육은 잘 해."
그랬다. 딸은 달리기를 잘해서 학교에서 매일 다른 아이들의 달리기 도전을 받아줘야 했고 친구들과 자전거 경주를 하느라, 아파트 지하를 아지트 삼아 탐정클럽활동을 하느라 매일이 분주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친구들이랑 자전거로 성북동 집에서 창경원까지 다녀왔다. 쌍문동으로 이사한 4학년때는 반에서 13명짜리 축구팀을 만들어 모든 반에 축구팀이 생기게 만들었다. 물론 매일 하루에 한 반이상의 도전을 받아주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수학학원을 다니겠다고 해서 보내주었더니 엉뚱하게 친구랑 한반 하려고 분반시험도 안치고 제 실력보다는 한참 떨어지는 반에서 어슬렁거린다고 학원선생이 일러주길래 그냥 끊어버렸다. 당시 큰 애의 전교 석차는 380명 중에 190등 바깥에서 주로 움직였다. 수학이 딱히 어땠는지는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걱정이 되어서 중 3 겨울방학때 서울대 공대 대학원에 다니는 6촌 여동생을 불렀다. 이때 3개월 동안 중학교 과정 수학을 확실히 깨우친 것이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가서 수학만은 잘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하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딱하다. 초등학교 때는 그저 놀리면 된다. 놀려야 한다.
작년에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막내를 과학고에 보내볼까 싶어서 특목고에 자녀 둘을 보낸 동서한테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동서 말이 이랬다. "형님, 딱 맞네요. 이제부터 학원에 보내서 미분 적분부터 가르치세요." 뭔 소린가 했더니 특목고를 가려면 진작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떼야 한단다. 초등학생한테 미분 적분을 가르친다면 그건 아동학대이다. 머리가 너무 뛰어나서 혹사를 시키지 않으면 휴식이 안되는 천재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두뇌는 나이에 따라 성장을 한다. 그 나이에 맞춰주지 않고 억지로 미리 가동을 해버리면 그 두뇌는 필연코 고장이 난다. 그런데 과학고에 보내기 위해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동서한테 "아이구, 됐네"하고는 말아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과학고를 나오고도 정작 대학에 가서는 수학심화반에 못 든 아이들은 너무 일찍 미분 적분을 배우다가 지친 아이들은 아닐까 싶다.
물론 대학 신입생 때 수학실력도 다가 아닐 것이다. 공부야 대학부터가 시작이다. 어린 시절을 신나게 뛰어논 덕분에 딸은 공부할 체력을 충분히 갖췄고 공부를 질릴만큼 해보지도 않았으니 조건이 좋은 셈이다.
마라톤 선수라고 해서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걷기를 빨리 시킨다고 보행기를 서둘러 태우면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이 나빠진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재능이든 어른이 되어 경쟁이 필요할 때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일찍부터 잘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윤송이씨에게도 엠아이티 박사를 일찍 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후 어른이 되어서 창의력을 갖고 사회에 새로운 것을 던져줄 줄 알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송유근군이 일찍 대학에 들어간들 학업에 쉬이 피로해진다면 빠른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이들이 실컷 놀면서, 사는 게 왜 이리 좋은가를 가슴 뻐근하게 즐겨야 할 어린 시절에 공부 공부 좀 제발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