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누가 나더러 인터넷에 뭐뭐가 실렸다길래 내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이렇게 쓰고보니 내가 내 이름을 검색하는 일은 마치 처음이라는 듯이 들리는데, 그건 아니고, 최근에는 안하던 일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해보았다는 말이다. 

 

내가 쓴 글을 옮긴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걔중에는 내가 쓰지 않은 글에 내 이름 석자를 붙여 놓은 것도 있었다. 어느 정치사이트에서 올린 글이었는데, 나라면 전혀 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따지자니 나와 똑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다 싶어서 그만 두었다. 시비로 밝혀질 것 같지도 않았다.

 

검색 내용 중에는 나에 대한 칭찬도 있어서 기분 좋기도 했는데, 칭찬 글을 쓴 어떤 양반이 내 사진을 찾아보았더니 <평균 이하의 외모>더라는 표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얼굴로 먹고 사는 직업은 아니지만 요즘같은 이미지의 시대에 이런 평가를 방치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좀 화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평균 이하의 외모라는 평가를 받을 줄은 몰랐다. 청수한 미인 축에는 못 들어도 젊은 시절에는 까칠한 성격만 아니라면 트럭 두어대 정도의 추종자를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을 정도의 풋풋한 외모를 자랑했다. 뭐 언론사 여성인력의 미모수준이 워낙 낮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신문사 들어와서는 미인이라는 소리도 꽤 들었는데, 평균은커녕 평균 이하라니, 그 평가가 놀랍다기보다는 낯설었다.

 

아마도 그 분의 평가는 어느 포털에 실린 사진 때문인 듯하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사진은 평균 이하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 포털에 실린 사진은 2003년인가 2004년 무렵에 기자협회보에 실린 것이다. 방송언어에 대한 칼럼을 썼더니 그에 대한 내용을 인터뷰한다고 찾아온 기자가 똑딱사진기로 찍은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발언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이 있는지, 하여간 용모는 아무래도 좋다는 주의여서 인터뷰하러 온다는 것을 알고서도 꽃단장을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도 오히려 더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선 것은 기자협회에서 자료사진을 쓰겠거니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탓이다.

 

이보다 더 전에는 동화작가로서 어느 아동학습지의 사외보에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도 사진은 자료사진을 가져가겠거니 하고서는 꾀죄죄한 모습으로 내용 중심의 인터뷰를 했다가 똑딱사진기에 속절없이 당한 적이 있다. 머리는 엉설궂게 묶어올렸는데, 인터뷰 내용조차 '집안에 굴러다니는 먼지뭉치를 보고 뭉치도깨비를 생각해냈어요'를 제목으로 뽑았으니 완전히 청소도 안하고 머리도 안 감는 아줌마로 보였다. 

 

그러고보면 신문사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30대 후반부터 사진은 늘 말썽이었다. 칼럼만 썼다하면 사람들은 내용에 관심이 없고 '사진을 왜 그런 걸 썼어'(내 얼굴을 아는 사람) '사진하고 영 다르네요'(실물을 처음 본 사람)하는 통에 여성 칼럼은 내용이 아니라 사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사진에 신경쓰면 어쩐지 속물스럽게 느껴져서 이상하면 이상한대로 편집자의 손에 맡겨버리곤 했다. 편집자란 자기가 보기에 당사자다 싶은 것을 고르니까 이 또한 누군가에게 보이는 내 얼굴이라 여기는 점도 있었다.

 

그런 내 눈에도 이 포털의 사진은 최악이라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는 전화를 할까 하는 생각도 몇 번 했다.

 

작은 딸이 세 살 때 연년생인 제 언니가 외출한 차안에서 동생을 돼지코라고 놀린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자 작은 딸은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더니 이렇게 물었다.

 

"엄마, 언니가 돼지코라고 나한테 말하기 전에도 엄마 혼자서도 그렇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사실 내 외모가 평균 이하라고 쓴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 포털의 내 사진을 찾아본 사람 모두한테 이렇게 묻고 싶었다. "다른 사람 말을 안 듣고 그냥 이 사진만 보고 내 얼굴이 평균 이하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물론 대답해줄 사람도 없고, 외모가 궁금한 사람에게 일일이 얼굴을 보여줄 기회도 없다. 당분간 텔레비젼에 출연할 계획도 없다. 그리고 사진기로 찍히는 얼굴은 거기가 거기인데다 아무튼 포털에 실린 사진의 위력은 신문에 실린 사진보다 훨씬 크다.

 

내가 찍힌 사진 가운데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느 대학교의 학생기자가 찍은 것인데, 나는 웹진에 실린 그 인터뷰의 논점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글을 내리라고 한 참이라 원본을 찾을 수 없다. 그때도 친구는 '사진 참 잘 나왔다'고 사진 이야기만 했는데, 나의 내용강박증은 그 부분을 무시했다. 그 사진이라면 내가 평균 이하의 외모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레 보여줄텐데...

 

아니면 내 사진을 제대로(!) 찍어서 여기에 올리는 것인데,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현재로서는 그 포털의 사진을 본 사람들한테 이렇게 주장할 수 밖에 없다. 자, 사진을 잘 봐요. 인상을 쓰고 있어서 그렇지 눈 코 입의 균형이 얼마나 좋습니까. 웃기만 했다면 만델라 정도의 얼굴은 된다구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실물이 늘 사진보다는 좋다는 말을 들어왔다니까요.

스파게티를 삶아준 그 신부님 이야기다.

 

이 신부님은 서울에 온 지 20년쯤 빈민사목을 했다. 올해는 그걸 벗어나 선교회 재정을 보고 계시다. 현장을 떠나 있으니 여가시간이 좀 생겨서 새로 지은 피정의 집 앞뜰을 꾸미는 일에 나섰다고 한다. 

 

지난번 갔을 때 보니 튤립과 몇 가지 꽃을 심어놓고 대나무와 바위, 벤치도 장식해놓았는데, 그걸 설명하는 걸 듣자니 이렇다.

 

"저건 유치원 앞에 버려져서 줏어왔고요."

"저건 아파트 단지에 버렸길래 줏어왔고요."

"저건 꽃집에서 버리는 것이라서 줏어왔고요."

 

대부분이 동네에서 버리는 걸 줏어다 놓는 모양이었다. 마침 가던 날에는 시들시들한 개나리가 여러 줄 꼽혀있었는데, 그것도 버려져있길래 가져다 심으면 날까 싶어 가져다 꽂았다 한다.

 

나는 신부님을 응원하고 싶어서 "신부님, 이렇게 하면 살아요. 잘 하셨어요."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 개나리도 아랫집에서 꺾어온 것을 땅에 꽂기만 했는데 살아서 마구 퍼져나갔으니까.

 

신부님한테 꽃이라도 사드리고 싶은 마음인데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은퇴하신 신문사 선배 한 분이 경기도 남양주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계신데, 우연히 우리집에 와보더니 꽃을 주겠다고 하셨다. 헌데 그 분이 주신다는 꽃이 디기탈리스나 무스카리처럼 화려한 서양꽃들이다. 물론 딸기와 여러가지 채소 모종도 준다고 하셨다.

 

나는 꽃으로는 모란이나 작약 구절초 같은 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선배가 보내온 메일 사진을 보는 순간 신부님이 떠올랐다. 신부님을 모시고 가서 예쁜 정원도 보게 하고 꽃도 좀 얻어드리자 싶었다. 나는 채소 모종을 얻어오면 되니까.

 

그래서 그날 스파게티를 먹으러 간 중신아지매한테 전화해서 신부님한테 연락을 해보게 했다. 신부님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기에 서울서 만나는 약속을 정하려고 전화를 드렸다.

 

약속을 다 정하고 나서 신부님이 이러신다.

 

"그런데요. 제가 정원을 보는 것은 좋은데, 꽃은 많이 못 사요. 돈이 조금밖에 없어요."

 

엥? 신부님은 어디 무슨 허브 농원 같은 데서 구경을 시켜드리고 화분을 사게 하는 삐끼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그럼, 안 간다고 할 일이지, 그래도 간다고 한 마음은 뭔지....착하기도 하셔라.

 

내가 웃으면서 "신부님, 돈 받는 데면 신부님 안 모시고 가지요. 공짜로 주는 거예요."했더니 신부님의 목소리가 확 달라진다. 나같으면 공짜란다고 반색하긴 뭐해서 표를 안낼 것 같은데, 가라앉았던 신부님의 목소리가 통통 튄다. "하하, 그래요? 아, 좋아요."

지난번에 통인시장에서 사온 조와 수수, 기장이 모두 곰팡이가 났다. 오래된 것인지, 젖은 것을 넣었던 것인지 몰라도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다 못먹게 되어 버렸다.

 

조금씩 두고 새를 불러모으려던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 곰팡이 난 것을 그대로 마당에 다 뿌려버렸다. 수수만 조금 남겨두었다. 

 

무더기로 곡식을 뿌리자 전에 못 보던 참새가 많아졌다. 가끔 멧비둘기와 까치도 등장했지만 참새는 열마리 넘게 떼거리로 나타났다. 부암동에 이사오고는 뱁새와 박새는 보아도 참새는 거의 보지 못했던 터라 참새가 줄어드는 중인가 하는 시답잖은 의문도 가졌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헌데 이 참새들, 꽤 웃긴다.

 

일단 떼거리로 움직이는 것이 다른 새와 다르고

 

내가 마당으로 나가면 어떤 새보다 빨리 날아간다.

 

며칠 전에는 학교 간다며 마당을 가로지르던 아들이 살짝 손가락질로 현관에 선 나를 부른다.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니 회양목을 가리킨다. 그 나무 안에 새들이 숨었다고 눈짓을 한다. 우리집 회양목은 2미터가 넘고 가지가 울창하다.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저귀는 소리가 딱 멈춘다. 봐서는 낙엽 몇 장만 안에 있는 듯하지 참새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소리도 적막하다.

 

회양목 주위를 오른쪽 왼쪽으로 멀찍이 돌다가 가까이 접근하니 여섯 마리는 되는 듯한 참새가 짹째그리 소리를 내며 후루룩 옆집 전봇대로 날아가 버린다. 사람이 접근한다고 숨죽이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참 영악한 놈이다 싶다. 전세계적으로 참새는 없는 곳이 없고, 가장 흔한 조류라는데, 다 이유가 있다. 협업을 잘하고 꾀가 많은 것이다.

 

그 후로도 참새는 내가 마당으로 나가면 얼른 피해가기는 하지만 수십마리가 꾸준히 찾아온다.

 

오늘 아침에는 집에 고양이가 찾아왔다. 밤에 담벼락을 타긴 해도 집에까지 들어오지는 않던 길고양이들인데 참새가 많아지니까 유혹을 느낀 모양이다. 현관 앞 풀밭에 앉아 웅크리고 있기까지 한다. 저렇게 지켜보다가 참새한테 틈이 생기면 잡아채려는 것이다.

 

전에 성북동 살 때 아파트 살던 언니가 병아리 산보를 시킨다고 우리집에 두 마리를 데리고 놀러온 적이 있다. 잠시 버려두고 집에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고양이한테 병아리를 잃었다.

 

고양이는 살생을 즐기는 야생의 본성이 있어서 날개 있는 것이라면 단숨에 죽이는 습성이 있다. 그때 마당에 늘어진 병아리 목이 너무 참혹했던 터라 참새를 발겨놓을까봐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고양이는 뒷마당쪽으로 사라졌다.

 

날아다니는 참새를 보면 '아 맛있는 놈들'하면서 어린 시절 먹은 참새구이맛이 먼저 떠올려지는 나이지만 고양이한테 참새를 잃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