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낳은 걸출한 철학자 맹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의 추성(鄒城)을 10월말에 갔다 왔습니다. 추성을 거쳐서 공자의 고향인 취푸(곡부 曲阜)로 가는 일정이었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인지 유교의 성지에서 갖는 감동은 별로 없습니다. 오가는 버스 안에서 제가 내내 읽은 것은 베트남의 호치민 전기였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나 공자 사당보다는 맹자 사당에 더 관심이 가더군요. 맹자는 적어도 일화면에서는 어머니가 더 유명한 사람 아닙니까.
추성에는 맹자의 사당인 맹묘(孟廟)와 맹자의 자손들이 벼슬을 받아서 대대로 산 저택 - 우리 말로 하면 종갓집쯤 되겠군요 - 인 맹부(孟府)가 있습니다.
저도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어머니인지라 당연 맹자의 어머니에게 관심이 쏠렸고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를 만들어낸 어머니의 유적도 있을 터이니 맹자 어머니에게 옷깃을 여미고 한번 읍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맹묘에는 가장 안쪽 깊은 곳에 세 채의 사당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가장 가운데에 크게 서있는 것이 물론 맹자의 사당이고 그 왼편,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으로는 오른 편에는 맹자 아버지의 사당이, 그 반대편에는 맹자 어머니의 사당이 있습니다.
맹자는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키운 자식입니다.
그가 자라는 데 아버지가 기여한 것은 별로 없다고 봐야겠지요. 맹자 어머니는 무덤가에 살았더니 아들이 곡소리만 흉내내고, 시장 옆에 살았더니 아들이 장사 흉내만 내서 학교 옆으로 이사 가서 아들을 대 학자로 만들었다는 일화도 유명하고 맹자가 공부를 중도에 마치고 돌아오자 짜던 피륙을 단번에 잘라 '중도에 그만 두면 공들인 일이 허사가 된다'는 교훈을 주면서 아들을 대 학자로 키워낸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없이는 자식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맹자의 아버지 사당이 만들어진 것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맹자의 아버지 사당은 '계성전(啓聖殿)'이고 어머니 사당 이름은 '치엄당(致嚴堂)입니다. 눈치빠른 분은 이미 아셨겠지만 전과 당의 차이 만큼 양쪽 사당은 규모가 차이가 났습니다. 전이 당연히 더 컸지요. (참고로 맹자 사당의 이름은 아성전 亞聖殿 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만 전(殿) 자(字) 사당입니다.)
내부에도 계성전에는 맹자 아버지의 조상이 크게 모셔져 있고 문도 활짝 열려져 있어 참배객들이 관람을 할 수 있게 해놓았으나 맹모의 사당은 문이 굳게 닫겨 있어 찾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저만이라도 맹자 어머니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치엄당으로 다가가 문틈으로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조상은 없었습니다. 그냥 맨 땅에 청소도구가 구석쪽으로 정리되어 있더군요.
그러길래 맹자 어머니는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들을 그런 남녀차별적인 유학의 법통을 잇는 대학자로 키워냈단 말입니까. ^^

skin by
그런데 중국의 북경 천안문 근처에는, 손문 선생의 부인이었고 중국 정치협상회의의 주석이었던 송경령 여사가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이곳은 여성이지만, 중국을 움직였던 여걸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서기자님이 쓰신 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이기는 합니다. 그러니까 핵심적인 주장은 '여와 남', '남과 여'가 '원칙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