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大勢)-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결정적인 형세.'
표준 국어사전에 설명돼 있는 단어 뜻 풀이입니다. 이 단어가 뭐 어쨌다고?? 누구나 다 아는 것을 새삼스럽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죠. 맞습니다. 특별한 단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에 좀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단어가 과반 집권여당의 당권경쟁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을 아실 겁니다. 당 의장과 4명의 상임중앙위원 등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열린우리당의 4월2일 전당대회가 2일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한달간의 본격 레이스를 시작했죠. 문희상 장영달 신기남 한명숙 송영길 염동연 김원웅 유시민 임종인 의원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이렇게 10명의 후보가 등록했습니다. 이제 본격 경쟁이 불을 뿜겠죠.
그런데 본격 레이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니 훨씬 그 이전부터 1등(당 의장)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당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그게 바로 이른바 '문희상 대세론'이죠. 실제 문 의원은 출마선언때 부터 16명의 현역의원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대규모 의원들로 구성된 선대위를 발족하고, 며칠전에는 배기선, 이석현 두 중진 의원을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선임하고 그 아래 10개 본부도 꾸렸습니다. 물론 본부의 장은 의원 아니면 중앙위원으로 채웠습니다. 앞으로는 16개 권역별 담당 의원도 선임할 예정입니다. 그 어떤 다른 후보도 하지 못한(아니면 하지 않은) 일이었죠. 가히 대세론이 나올 만도 할 상황인 것은 맞아 보입니다. 많은 현역의원들과 중앙위원들의 지지를 이미 확보했다는 의미인데다 그 사람들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다른 선거인단(대의원)의 지지도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러다 보니, 당권경쟁 초반 눈에 띄는 논쟁 중 하나가 바로 문희상 대세론이 실체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문 의원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그중에서도 문 의원과 '3강'을 형성하고 있다고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장영달 신기남 두 의원이 가장 날카롭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장영달 의원은 '지금 대세론은 의미 없다. 당원들이 초록동색의 지도부를 만들어 하나마나한 전당대회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각을 세웁니다. 더구나 '특정 후보에 의한 세몰이는 구태이자 우려스러운 일'이라면서 문 의원을 직접 비판하기도 합니다.
신기남 의원측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세론은 중진들 사이에서 형성된 것으로 당원들에게 통용되지는 않는다. 허울뿐인 대세론을 뒤집고 우리가 1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을 합니다. 신 의원은 문 의원을 향해 낡은 계보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의원 중심의 선대위를 해체하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원웅 의원은 문 의원이 의원들을 대동하고 출마회견을 한 것을 빗대 '병풍정치'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위 사람들의 주장과 말을 종합하면 한마디로 대세론은 전혀 실체가 없다는 겁니다. 그 논리의 핵심은 바로 옛날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식의 하향식으로 선거인단(대의원)을 구성하는게 아니라, 이제는 대의원이 아래에서 위로 선출된다는데 있습니다. 의원들과 중앙위원들의 지지를 많이 확보했다고 상향식으로 선출된 1만3,000여명 대의원의 주요한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당심(黨心)은 다를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 의원측은 전혀 달리 얘기하죠. 대세론은 실체가 있다는 겁니다. 경륜과 포용, 통합성을 두루 갖춘 문 의원이 가장 적임자임을 당원들이 충분히 판단하고 있을 것이고, 이미 문 의원은 그런 당심을 선점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경제우선으로 잡은 참여정부 3년차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고 당을 끌어가는데도 문 의원이 가장 적적절하고, 당원들도 이미 이것을 알고 있다는 논리도 따릅니다. 다른 의원들이 줄세우기니 병풍정치라는 등으로 비판하는데 대해서도 '의원들의 지지를 줄 세우기로 폄하하는 것은 본인들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 아니냐'고 일축하며 반격하고 있습니다. 다른 후보들이 문 의원측을 집중 공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문 의원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걸 방증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심리도 있습니다. 지금의 분위기를 끝까지 몰고 갈 수 있다면 1위는 무난할 거라는 속내겠죠.
문 의원 진영과 경쟁 후보 진영간 대세론을 보는 관점은 이렇게 정반대입니다. 물론 각자의 득표 활동을 위한 나름의 논리겠지만 말 그대로 '결정적인 형세'라는 뜻의 '대세'라는 단어를 두고 이렇게 정반대의 해석이 나오는 걸 보면 흥미롭기도 합니다. 정치권에선 결정적인 형세도 완전히 반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일까요.
어쨌든 문희상 대세론이 종반까지 지속될지, 아니면 정말 다른 후보 진영의 주장처럼 실체 없이 수그러들지를 지켜보는 것은 중요한 관전포인트 중 하나인듯 합니다. 솔직히 문 의원이 무난하게 1위를 할 것인지 쉽게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현재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는 일부 여론조사 등을 보면 문 의원이 선두인 것은 사실인듯 합니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지난해 1월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해 당의장을 차지했던 때에도 정동영 대세론이라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희상 대세론이 일찌감치부터 언급돼 왔습니다. 참 희한한 차이죠. 문 의원이 훨씬 큰 표차로 1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정반대로 득표 경쟁이 아슬아슬 할 것이라는 뜻일까요. 모를 일입니다.
여하튼 '대세론'을 두고 벌어질 문 의원대 여타 진영의 경쟁과, 그 속에 담긴 함의를 풀어보는 것도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당의 전당대회를 감상하는 좋은 관전법이 될 듯합니다. 한번 같이 지켜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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